기획1 07년 KRA컵 결승선 지나는 루나
왼쪽 앞 다리 장애를 딛고 최고의 경주마로 이름을 떨쳤던 ‘루나’가 지난 2007년 KRA컵 결승선 지나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스포츠서울 | 박현진기자]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2020 도쿄올림픽이 마무리되고 24일부터는 ‘2020 도쿄 패럴림픽’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패럴림픽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이들이 펼치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이런 극적인 감동 스토리는 패럴림픽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과 호흡하는 경마 스포츠에도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우뚝 선 사례들이 제법 많다.

◇ 왼쪽 앞다리 장애를 딛고 달린 ‘루나’

2003년 경주마 경매장에 왼쪽 앞 다리에 장애가 있는 말 ‘루나’가 등장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도 않고 선택도 하지 않은 그 말은 당시 최저가였던 970만원에 간신히 낙찰되며 주인을 찾았다. 이성희 마주와 김영관 조교사에게 루나는 풀기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다. 2004년 부산경남 모의경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뒷다리를 절어 정밀진단을 한 결과 천장관절 인대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경주마로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의 희귀질환이었다.

많은 우려를 안은 채 2005년 9월 30일 제10경주에서 루나의 데뷔전이 열렸다. 당시 인기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가망이 없어 보였던 루나는 중위권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바깥쪽에서 치고 들어와 결승선을 50m 앞두고 1위로 올라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루나의 기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펼쳐진 대상경주인 경상남도지사배를 1회, 2회 모두 석권하며 2연패를 이뤄냈고 제3회 KRA컵 마일까지 우승해 5년 동안 33전 13승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을 만들어냈다. 루나가 벌어들인 상금만 7억 6000만원이었다. 경매가 970만원의 78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루나는 8살이 되던 해 5년의 경주마 생활을 마무리했는데 마지막 은퇴 경주에서도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아름답게 경주로를 떠났다. 루나가 전한 감동 실화는 영화 ‘챔프’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는 루나의 은퇴경기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마사회는 대표적인 암말 명마로 이름을 남긴 ‘루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트리플 티아라 시리즈의 첫 관문인 ‘루나 스테이크스’(Luna Stakes) 경주를 신설했다. 장애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루나의 가르침은 국가대표 암말을 선정하는 경주로 영원히 기억 속에 남게 됐다.

기획1 동화로도 만들어진 경주마 라갓
시력을 잃고도 최고의 실력을 과시했던 이탈리아 경주마 ‘라갓’의 스토리는 동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공 | 한국마사회

◇ 이탈리아의 동심을 사로잡은 ‘라갓’

2003년 태어나 2006년 데뷔한 이탈리아의 경주마 ‘라갓’(Laghat)은 오른쪽 눈은 실명 상태였고 왼쪽 눈 또한 95% 시력을 상실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라갓은 9년 동안 총 123번의 경주에 참가해 26번의 우승과 10만 파운드가 넘는 상금을 획득하며 장애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입증했다.

2015년 11월 라갓이 은퇴할 때 그가 데뷔했던 경마장인 산 로소레(San Rossore) 경마장에서는 은퇴식을 열어주기도 했다. 라갓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동화책으로 만들어져 어린이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기획1 1940년 산타 아니타 핸디캡 경주 우승한 씨비스킷
천덕꾸러기였던 ‘씨비스킷’은 레드 폴라드 기수와 만난 뒤 명마로 거듭나며 미국인들에게 감동 스토리를 선사했다. 사진은 ‘씨비스킷’이 1940년 산타 아니타 핸디캡 경주에서 우승하는 모습.  제공 | 한국마사회

◇ 미국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 ‘씨비스킷’

미국에도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낸 역사적인 콤비가 있다. 1930년대 대공황에 허덕이던 미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단숨에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말 ‘씨비스킷’(seabiscuit)이 그 주인공이다. 체격도 작고 저체중으로 볼품없었던 ‘씨비스킷’은 그저 자는 것을 좋아하고 난동만 피우는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다. ‘씨비스킷’의 첫 트레이너는 그를 두고 “죽을 정도로 게으름뱅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교사 톰 스미스는 ‘씨비스킷’의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마주를 설득해 8000달러에 ‘씨비스킷’을 구입했다. 그리고 권투 선수 출신의 기수 레드 폴라드와 짝을 지었다. 어릴 적부터 권투와 기수 생활을 병행하며 힘겨운 삶은 살아오던 폴라드는 오래된 복싱 선수 생활로 한 쪽 눈마저 실명한 상태였다.

스미스는 말에게 헌신적이었다. 고급 건초를 먹이고 오랜 시간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며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데 주력했다. ‘씨비스킷’의 성장은 놀라웠다. 1937년부터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더니 1938년에는 미국 경주를 지배했다. 그의 소식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아돌프 히틀러보다도 많은 지면을 차지하기도 했다.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씨비스킷’과 레드 폴라드는 1940년 캘리포니아 산타 아니타 핸디캡 경주에서 우승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경마라는 격렬한 스포츠에서도 신체적 장애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계를 넘어선 모습은 우리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긴다. 다가오는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도 투혼과 열정이 빚어낸 기적의 순간들이 펼쳐질 것이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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