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아
홍은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지난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 단독인터뷰에 앞서 협회 로고 앞에서 포즈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여자도 축구에 미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대한축구협회(KFA) 정몽규 회장은 세 번째 임기 시작과 함께 ‘안정 속 파격’을 키워드로 여성 임원을 대거 등용해 이목을 끌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국제 심판으로 이름을 떨친 이화여대 홍은아(41) 교수를 여자축구 및 심판 행정을 책임지는 부회장으로 전격 선임한 점이다. 여성이 KFA 부회장직에 오른 건 홍 부회장이 처음이다. 그는 당시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노출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부회장으로 선임된 지 3개월이 지난 그는 학교 수업과 KFA 행정을 돌보는 이중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 부회장은 지난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한 스포츠서울과 단독인터뷰에서 “부회장 선임 보도가 나간 뒤 제자 뿐 아니라 졸업생, 연락이 끊겼던 지인에게도 연락이 왔다”며 “설레는 감정은 하루 이틀에 불과했다. 커다란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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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회장은 이화여대 체육학과 졸업을 앞둔 2003년 1월 한국인 최연소인 만 23세에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심판 자격을 얻은 뒤 세계청소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다양한 국제대회를 누볐다. 특히 2010년 비영국인 최초로 여자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결승전 주심을 맡았다. 이어 같은 해 U-20 여자월드컵 개막전 주심으로 나서면서 한국인 최초 FIFA 주관 대회 개막전 심판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영국 러프버러대학에서 스포츠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2012년 현역 은퇴 이후 모교 체육과학부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또 FIFA 심판 강사로도 활동했다.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여자 축구를 블루오션으로 언급하며, 저변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누구보다 여자 축구 현장 경험이 많고 이론을 탑재한 홍 부회장을 중심으로 여성이 축구에 참여할 기회를 늘리고, 등록인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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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여자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결승전 주심으로 활약한 뒤 시상대에 선 홍은아 부회장. 제공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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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홍 부회장은 “여자 축구는 이제 대표팀 위주의 단기적인 목표가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어린 여아서부터 축구를 접할 기회를 늘리는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회에서는 네 살, 다섯 살이 여아가 자연스럽게 공차는 경험을 통해 친구도 사귀고 건강도 얻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태스크포스(TF)팀을 중심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를 만나 ‘여아들과 축구’에 대한 인식 전환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어린 시절 축구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홍 부회장이 오래전부터 고민한 부분이다. 그는 “스스로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느낀 건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왜 남학생에게 축구하라고 하면서 여학생에겐 피구하라고 하느냐’였다”며 “놀랍게도 학교(여대 체육과학부)에서 만나는 다수 제자가 나와 유사한 생각을 하더라”고 말했다.

공이 너무 좋아 유년 시절 ‘통키’라고 불렸다는 홍 부회장도 초등학교 시절 남학생과 어울려 공을 차고 싶어도 ‘여자가 왜’라는 시선에 늘 마음이 쓰였단다. 그는 “모교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축구동아리 대회가 있다. 선착순 10개 팀을 받는 데 금세 채워진다. ‘경영 마드리드’ 등 재치 있는 이름으로 출전하는 팀이 많다”며 “남녀 공학에서는 이토록 활발하지 않다. 여학생끼리 모아놓으니 눈치 보지 않고 축구를 즐기더라”고 말했다. 이어 “축구는 남녀 구분 없이 하면 중독된다. 축구에 대한 맛을 여학생이 경험하지 못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지소연, 조소현 등 현재 A대표팀 황금세대가 은퇴 이후 지도자 뿐 아니라 국제 행정가 등 다양한 진로로 뻗어 나가면 여자 축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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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회장은 심판 판정에도 소신껏 말했다. 프로축구 K리그 심판 운영권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KFA로 이관됐다. 그럼에도 판정 논란은 꾸준히 발생한다. 그는 “축구 팬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오심이 발생하고 비판받는 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오심이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다만 내 의지는 이젠 (국내 심판진에) 외부 자극이 필요할 때이고 그렇게 추진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홍 부회장은 최근 말레이시아 출신 FIFA 심판 강사 수키딘 빈 모드 살레를 KFA 심판 수석 강사로 영입하는 데 힘을 썼다. FIFA에서 심판강사를 지도하는 강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10명이 되지 않는데 수키딘은 그중 최고 강사로 꼽힌다.

국내 축구엔 비디오판독(VAR)이 이르게 도입됐지만 여전히 ‘그레이존’에서는 심판은 물론 평가관의 견해가 엇갈린다. 그래서 갑론을박으로 벌어진다. 홍 부회장은 그레이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잡는 데서 오심 논란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수키딘을 영입, 전 세계 심판이 모두 신뢰할 만한 인사를 통해 판정 기준을 더 명확히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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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대한축구협회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한 홍 부회장은 중학교 시절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한국-스페인전에서 양탄자 같은 잔디 위 심판을 보고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막연하게 심판의 꿈을 키운 그는 1999년 대학에 합격한 뒤 신입생이 되기도 전에 114에 전화를 걸어 KFA 연락처를 문의했다. 그리고 당돌하게 KFA 경기국에 연락해 “심판이 하고 싶다”며 관련 절차를 물었다.

축구라는 굴레에서,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남보다 한 발 더 빠르게 미래를 그려온 홍 부회장이다. 그는 최종 목적지를 묻자 “어릴 때부터 늘 5년, 10년 뒤를 생각하며 지냈더니 이젠 피곤하다”고 웃더니 “어느 순간 미래 계획 없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랬더니 지금처럼 생각지 않은 길이 열리더라. 앞으로도 여성 축구인으로 묵묵히 현재 내 일에 충실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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